국가라는 것은 자신이 마음대로 국가를 자칭한다고 해서 인정되지 않고, 다른 "신뢰할 수 있는 국가"로부터 승인되어야 만 국가로 인정해준다.
그렇다면 지구 역사상 가장 짧았던 국가 존속기간을 가졌던 나라는?
5위 : 페로 제도 공화국(1946년 9월 18일 ~ 9월 24일 6일간)
독립 투표가 무효로 간주되어 해산 된 국가.
페로 제도는 영국 제도의 북쪽에 떠있는 북방의 외로운 섬으로, 북서쪽 아이슬란드와 마찬가지로, 노르웨이 바이킹의 후예가 살고 있다.
오랫동안 노르웨이 지배하에 있었지만, 16세기에 노르웨이와 덴마크가 동군 연합 된 후에는 노르웨이=덴마크 령이되었고, 1814년에 연합이 해소 된 시점에서 북서쪽 아이슬란드와 마찬가지로 덴마크 령이 되었다.
1940년에 제2차 세계 대전이 발발하자, 독일군으로부터 북방을 위협받는 것에 두려워 한 영국은, 아이슬란드와 페로 제도를 점령. 본국 덴마크는 독일 점령하에 있었고, 영국 제도의 주민 자치를 주었다.
한편 아이슬란드는 전쟁 전부터 강하게 독립을 바라고 있었고, 본국 덴마크와 연락이 닿지않는 것을 기회로 독립을 선언하고 말았다.
전후, 페로 제도의 주민 중에는, 형제 아이슬란드와 마찬가지로 우리도 독립하자는 목소리가 높아지면서, 1946년 9월 14일에 독립의 찬반을 묻는 주민 투표가 실시되었다고 한다.
결과는 독립 찬성 5660표에 반대는 5499표.
이 결과를 가지고 9월 18일 "제도 공화국"의 독립을 선언했다. 그러나 이틀 뒤인 9월 20일에 덴마크 정부는 "3분의 2의 찬성이 없는 이상, 독립 선언은 무효"라고 통보. 또한 4일 후, 덴마크 국왕 크리스티안 10세가 이 제도를 방문, 공식적으로 독립의 무효와 국회 해산을 선언하고 불과 6일 공화국은 해체되어 버렸다.
4위 : 소말릴란드 공화국(1960년 6월 26일 ~ 7월 1일 5일간)
남부 소말리아와 통합하기 위해 편의적으로 독립.
소말리아는 현재도 분열 상태가 계속되고 있으며, 북부 소말리아는 "소말릴란드"라고 스스로 자칭하고 1991년에 독립 선언을 해 지금에 이르고 있다. 기타 동부는 푼틀란드로 스스로 자칭, 독립 국가를 주장하고 있으며, 수도 모가디슈의 힘은 남부 밖에 미치지못하고 있다.
이 북부 소말리아는 단 5일만 "소말릴란드 국가"라는 이름으로 독립한 적이 있다.
제2차 세계 대전 후, 남부 소말리아는 이탈리아의 신탁 통치 령이되어, 북부는 영국령이 되어있었다. 1960년 아프리카의 독립 러쉬속에서 영국과 이탈리아는 소말리아 독립을 인정하게 되었다. 분열의 시기가 오래 지속되었지만, 소말리아 인들은 남북의 통합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많았기 때문에, 1960년 6월 26일 북부 소말리아는 "소말릴란드 국가"로 영국으로부터 독립. 그 5일 뒤인 7월 1일에 남부 소말리아는 "소말리아 공화국"으로 독립. 이날 소말릴란드 국가는 소말리아 공화국에 합병되었다.
그런데 바로 부족간 충돌에 의해 내전에 돌입. 남부 소말리아의 혼란은 현재도 계속되고 있지만, 북부 소말리아는 재빨리 1990년대 초반에 스스로 질서를 회복. "소말릴란드"라고 칭하고 국토의 장악과 국가 운영을 지금도 계속하고 있다.
3위 : 카르파토 우크라이나(1939년 3월 14일 ~ 3월 15일 1일)
불과 하루만에 헝가리에 합병 된 우크라이나 국가
이에 대해서는, 독일과 가까운 관계였던 헝가리도 구 영토 카르파티아 루테니아(현 우크라이나 서부 자카르파탸 주)와 북 헝가리(현 슬로바키아)의 할양을 체코 슬로바키아에 요구했다.
카르파티아 루테니아는 체코 슬로바키아 중에서도 루테니아 인(우크라이나 인)이 많았고, 슬로바키아는 당연히 슬로바키아 사람이 많은 땅으로, 주변 각국이 영토 분쟁의 대상이기도 했지만, 민족 자결의 조류 중 독립 운동도 거세게 일어나고 있었다.
결국 독일로의 슈데텐 지방 이양은 인정되었고, 체코 슬로바키아 정부의 구심력이 저하되어, 카르파티아 루테니아와 슬로바키아에 자치권이 부여 체코 슬로바키아의 자치 공화국이 되었다.
그러나 헝가리는 계속 두 자치 공화국의 할양을 독일에 요구. 독일과 헝가리는 밀약을 맺고 슬로바키아의 이양은 인정하지 않는다고해도, 카르파티아 루테니아의 합병은 눈감아주는 타협이 이루어졌다.
1939년 3월 14일, 독일의 움직임으로 슬로바키아 자치 공화국은 독립 선언을 하고 "슬로바키아 공화국"이 성립. 같은 날 카르파티아 루테니아 자치 공화국도 독립 선언을 하고 "카르파토 우크라이나"가 성립되었다.
그러나 독일과의 밀약을 맺었던 헝가리 군이 독립 선언과 동시에 카르파티아 루테니아를 침공, 하루만에 수도 랜달은 함락. 저항군도 3일만에 제압당했다.
2위 : 크리미아 공화국(2014년 3월 17일 ~ 3월 18일 1일)
현재도 갈등이 지속되고 있는 러시아에 의한 일방적인 크리미아 합병.
러시아 혁명 후, 크림은 1921년에 적군의 침공을 받고 "크림 자치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이 성립되어, 1945년에 정식으로 러시아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에 합병되었다.
그 과정에서 크리미아 타타르 족은 중앙 아시아로 추방되었고, 러시아 사람이 많이 이주했다. 1954년 크리미아 주는 우크라이나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으로 이관되었고, 우크라이나 사람도 크리미아로 이주하게 되었다.
1991년에 우크라이나가 독립하면서 크리미아도 계속 우크라이나에 속하는 것으로 되어있었지만, 러시아계 주민은 우크라이나에 의한 통치를 우너하지 않고, 자치를 요구했기 때문에 군항이 있는 세바스 토폴 이외는 크리미아 자치 공화국으로 일정한 자치를 인정하게 되었다.
그런데 2014년에 우크라이나에서 친러파 야누코비치 정권이 붕괴하고, 친 EU파가 주도권을 잡게되었고, 친 EU 파에 반발하는 러시아 계 주민과 무장 세력(러시아군)은 의회를 점거, 3월 11일에 열린 크리미아 자치 공화국 의회와 세바스 토폴 시의회에서, 크리미아 자치 공화국과 정부 직할지 세바스 토폴 시는 일방적으로 우크라이나에서 독립과 "크리미아 공화국"의 성립을 선언했다.
3월 16일 "우크라이나에 잔류하거나", "독립을하고 러시아에 편입되거나"하는 것을 주민투표로 실시. 그 결과 후자가 다수가 되고, 3월 17일에 "크리미아 공화국"은 독립, 다음날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크리미아를 러시아 편입에 승인했다.
크리미아 공화국은 1일로 소멸, 예정대로 러시아에 편입 된 것이었다.
1위 : 러시아 민주 연방 공화국(1918년 1월 19일 13시간)
불과 13시간 만에 붕괴 한 러시아 최초의 헌법 상 국가.
이월 혁명으로 러시아 로마노프 왕조는 무너지고 입헌 민주당 주도로 "러시아 임시 정부"가 성립. 임시 정부는 조속한 정부 수립을 목표로 제헌위원회를 설립하여 헌법 제정을 서둘렀다.
그런데 10월 혁명의 발발로 임시 정부가 무너졌고, 레닌은 1917년 10월에 "인민 위원회"를 설립하고, 제1차 세계 대전에서의 철군과 토지의 분배, 은행 국유화, 계좌의 압류 등을 채택했다.
베드로 그라드와 모스크바를 중심으로 볼셰비키가 기세를 더해갔다. 조급 한 민주파와 멘셰비키는 적군에게 반격을 시작한다.
중단되어있던 제헌위원회의 헌법은 마침내 이듬해 1월에 발표되었고, 1918년 1월 19일, 민주적으로 선출 된 의원을 통해 "러시아 정부의 형태에 관한 결의서"의 설계도를 채택. 러시아 민주 연방 공화국의 성립을 선언했다.
헌법에 따르면, 러시아를 민주주의 공화국이라고 정의하고, 원수는 대통령이고 의원을 1년 임기로 선출하고, 선거권은 20세 이상의 남녀에 있다고 했다.
그러나 의외는 공화국 선언으로부터 불과 13시간 만에 러시아 중앙 집행위원회(후 소련 최고 회의)의 명령으로 해산 되었고 헌법도 중지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