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세의 전염병 전문 의사가 착용했던 마스크

중세 유럽에서는 페스트 균의 감염에 의해 일어나는 감염증이 대유행했었다. 흑사병이라 불렸던 이유는, 감염자의 전신의 피부가 출혈에 의해 검은 보라색을 띠었다는것에 유래한다.


독일, 바이에른 주의 잉골슈타드에 있는 의학 역사 박물관(German Museum of Medicine History)에서는, 전염병 전문 의사가 착용했었던 부리 모양의 마스크가 전시되어있다.



■ 전염병 의사가 착용 한 부리 붙은 마스크


전염병은 중세 유럽을 중심으로, 여러 차례의 세계적인 대유행이 기록되어있다. 전염병 의사는 전염병 환자를 전문적으로 치료하는 의사로, 흑사병이 만연했던 시대에 많은 전염병 환자를 안고있는 도시에서 특별히 고용 된 자들이다.


당시, 전염병이 어떻게 확산되었고, 사람의 몸을 침식 해가는 것에 대해서, 주로 두 가지 설이 있었다. 사체액설과 장독설이다. 장독설은, 사람은 나쁜 공기(기체 또는 안개같은 에어로졸 형태의 물질)때문에 병으로된다는 설로, 전염병 의사는 장독 대책으로 마스크를 착용했다.



식물, 허브 등의 쾌적한 향기를 들이 마시면, 나쁜 공기가 정화되고 독기를 흡입하지 않게 할 수있다고 믿고 있었기 때문에, 긴 부리 안에는 대량의 향신료가 담겨 있었다.


<파울 퓨스트에 의한 1721년경의 판화. 로마의 부리 의사로 소개 된 마르세유의 전염병 의사를 그렸다. 부리처럼 보이는 부분에 허브가 채워져있고, 병을 옮기지 않도록 했다>




눈 부분에는 유리로 가려져있고, 스트랩이 붙은 부리 부분을 의사의 코 앞에 붙여 부리에 아로마 향기를 듬뿍 풍겼다는 것. 그 중에는 장미와 카네이션 꽃을 건조시킨 것이나, 민트 등의 허브와 향신료, 장뇌, 식초를 적신 스폰지 등이 있었다는.




이 마스크는, 전염병 존재가 알려지기 이전, 질병의 주요 원인이라고 생각되었던 장독, 즉 나쁜 공기를 마시지 않도록 하기 위한 궁리였다. 허브가 전염병의 나쁜 냄새를 격퇴하고, 병에 걸리는 것을 막아 준다고 당시의 의사들은 믿고있었다.


부리 마스크를 쓰고 넓은 챙이있는 가죽 모자를 쓴 전염병 의사들은 그 복장으로 바로 직업을 알 수있었다. 나무 지팡이를 가지고 환자에 직접 닿지 않도록하면서 진찰했다. 그 지팡이로 사람들을 접근하지 못하게했고, 전염병 환자의 옷을 벗기기도 했었다고.


■ 병사의 갑옷에서 영감을 얻은 방호복



역사가에 따르면, 이 부리 의상을 처음 제안한 것은 샤를 드 롬이라고한다. 롬은, 병사의 갑옷으로부터 힌트를 얻어, 1619년에 머리부터 발끝까지 전신을 지키는 이 보호복의 아이디어를 고안했다.


부리가 달린 마스크에는, 유리로 된 안경이 붙여졌고, 목에서 발목까지의 긴 가운은, 모로코나 레반틴의 가죽이나 왁스로 코팅 된 원단으로 만들어졌다. 밑에는 신는 레깅스와 장갑, 부츠, 모자도 왁스로 코팅 된 가죽이었다. 이 방호복도 부리 속에 있는 좋은 향기의 허브가 담겨있었다.





■ 사신과 함께 오는 전염병 의사


제네바의 의사 장 자크 만게는, 마르세유의 대재앙 후에 쓴 전염병에 관한 1721년의 논문에서, 1636~37년 네덜란드 네이메헌에서 전염병 의사들이 착용했던 의상에 대해 주목했다.



그 방호복의 일러스트는, 이 논문의 삽화로 되어있다. 네이메헌의 전염병 의사들도 부리 붙은 마스크를 쓰고, 모로코 가죽으로 만든 겉옷, 레깅스, 모자, 장갑을 착용 할 수있다.


로마에서 14만 5000명, 나폴리에서 30만명이 희생 된 1656년의 전염병 대유행 때도 전염병 의사는 이 보호구를 사용. 한눈에 알 수있는 그 의복은 사람들을 위협했고, 사신과 같은 심블이라 생각했던 것 같다.



전염병 의사는 경험이 풍부한 의사뿐만 아니라, 장사가 잘되지 않았던 2류 의사 또는 자신의 입지를 내세우려는 젊은 의사도 많았다. 도시에 고용 된 그들은, 보수도 도시 측에서 지불했기 때문에 빈부의 대우없이 누구든 공평하게 치료를 한 것으로 알려져있다.


전염병 의사의 본래의 직무는, 전염병 환자의 치료와 사망자의 매장이었지만, 사망자 수를 공식 기록에 기재하고, 환자의 마지막 소원을 문서로 남기는 일도 있었다. 또한 사자나 죽어가는 사람의 유언을 지키고, 증언하기 위해 호출 될 수도 있고, 전염병의 치료를 더 잘 이해하기 위해 부검을 요청하는 것도 있었다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