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이 많았던 나치 독일.
1920~1930년대, 이탈리아의 파시스트와 독일 나치스와 같은 국가 사회주의는 전세계의 무브먼트가 되었지만, 한편으로는 배타주의와 군비 확장을 서서히 추진하였고, 반대하는 세력은 가차없이 탄압했기 때문에, 국내외 불문하고 다수의 적을 만들었다.
특히 제2차 세계 대전이 발발하고, 다양한 수준에서 반 나치 독일의 저항 운동이 활발하게 전개되었다.
그런 반 나치 독일의 레지스탕스 운동을 7가지 살펴보면....
1. 유고 슬라비아 민족 해방군(유고 슬라비아)
2개의 저항 조직.
1941년 4월, 유고 슬라비아 왕국은 추축군 (독일, 이탈리아, 헝가리, 불가리아)의 침공을 받고 10일 정도만에 왕국은 붕괴. 유고 슬라비아는 추축국에 의해 영토 분할 또는 괴뢰 정권을 수립하게 되었다.
이 사태로 국내에서는 반 추축국을 내걸고 크게 두 단체가 붕기했다.
첫 번째가 왕국의 군대의 잔재로 조직 된 체트니크. 두 번째는 유고 슬라비아 공산당이 조직 한 "유고 슬라비아 민족 해방군"이다.
체트니크는 민족적인 대 세르비아 주의를 내걸고, 세르비아 땅에서 다른 민족을 내쫓고 대 세르비아 왕국을 건국한다는 구상을 갖고 있었다.
한편 파르티잔을 이끄는 티토는, 민족 결집과 유고 슬라비아의 단결을 꾀하고 있어 양자는 상반되는 존재였다.
처음에는 공동 전선을 펼쳤지만, 점점 적대시하게 되었다.
연합군은 당초 파르티잔이 공산주의를 내걸고 있는 것도 있고해서, 체트니크을 지원하고 있었지만, 체트니크가 너무 겁쟁이 인 반면, 파르티잔이 빈약 한 무장과 보급에도 불구하고 추축국 측의 거듭된 소탕 작전에도 무너지지 않고 용감하게 싸워, 전과를 올리고 있는것을 보고 전략을 변경. 파르티잔에 대한 전폭적인 지원을 하기로 결정한다.
보급을 충분히 받을 수 있게 된 파르티잔은, 또한 각지에서 세력을 높이고 전투를 확대. 영국 공군의 지원 등은 받았지만 거의 자력으로 유고 슬라비아에서 추축군을 쫓아내는데 성공했다.
2차세계 대전 후, 그 공을 인정 받아 파르티잔을 이끈 티토를 수반으로 한 유고 슬라비아 사회주의 연방 공화국을 건국하기에 이른다.
2. 자유 프랑스군(프랑스)
프랑스 해방을 내건 "외국인" 부대
1940년 나치 독일의 침공을 받은 프랑스는, 연전 연패를 거듭하여 6월 21일에 주석 필리프 페탱은 항복. 남 프랑스를 지배하는 프랑스국으로 중립국을 선언한다.
한편, 국방 장관이었던 샤를 드골은 런던에 망명, 스스로를 프랑스 정통 정부의 대표로 주장 "자유 프랑스"의 수립을 선언했다.
주로 프랑스 식민지 국가의 병사들로 구성된 "자유 프랑스군"을 수립.
주로 시리아, 레바논, 북아프리카 등 비쉬 정부가 지배하는 프랑스 식민지 점령 작전에 참여했다. 병사의 출신지는 세네갈, 알제리, 카메룬, 타히티 등이 많았고, 또한 아르헨티나와 우루과이 등의 의용병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프랑스 인의 수는 적었다고 한다.
드골은 "프랑스 공화국 임시 정부"를 수립하고, 집요하게 연합군에 정당성을 어필.
그 보람이 있어서일까? 연합국과 함께 파리에 입성 한 임시 정부는 공식적 프랑스의 대표로 간주되었으며, 드골은 후에 프랑스 다섯번째 공화제를 수립했다.
3. 우크라이나 봉기군(우크라이나)
농민 주체의 반체제 무장 조직.
제2차 세계 대전 발발 후, 우크라이나에서 반 나치 반 소련, 반 폴란드 우크라이나 독립을 내건 일부 무장 조직이 게릴라 투쟁을 벌이고 있었다.
1942년 2월부터 우크라이나 영토를 침공 해 온 독일군에 저항을 시작했다.
독일이 대 소련 침공 작전에 실패하고, 동부 전선에서 물러난 1944년 후반 이후는 유일하게 소련군 상대로 게릴라전을 전개. 외국에서 전혀 지원을 받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서부 우크라이나 전체를 지배하에 들게 할 정도로 세력을 확대한다.
대전 후 소련, 폴란드, 체코 슬로바키아는 우크라이나 반란 세력을 철저하게 탄압. 1950년에 로만 슈헤비찌가 전사한 후 급속히 와해되어 멤버는 각지에서 망명, 소멸되었다.
4. 비밀군(벨기에)
전직 국군 병사들의 저항 조직.
Geheim Leger(Secret Army)는, 나치 점령하 벨기에 최대의 레지스탕스 조직이다. 벨기에는 1940년 불과 18일만에 독일군의 공세에 굴복하게 된다.
해산 된 벨기에 군 병사들은 일부 지하 무장 조직을 구성하고 있었지만, 1944년 런던에 있던 벨기에 망명 정부의 찰스 클로스 대령을 중심으로 결집해, 일대 레지스탕스 조직을 형성했다.
비밀 세력에 합류 한 병사는 5,400명 정도로, 연합군의 노르망디 상륙 작전 이후, 벨기에 영내에서 철도 및 교량, 무선 파괴 공작이나 게릴라전을 전개.
독일 지배로부터 해방되어, 벨기에 정부가 부활 한 후 국군에 흡수되었다.
5. 농민 부대(폴란드)
농민에 의한 자경단 조직.
폴란드는 독일과 소련에 의해 분할 된 후, 1940년에 농민이 주체가되어 조직 된 자경단 조직.
주로 독일 이민 기업에 대한 저항, 몰락 한 농민, 유대인, 인테릴전스에 대한 지원을 실시했다. 1942년 동남부 마을 자모스크 근처의 비옥한 흑토의 농지에 독일인 이주자들이 대거 몰려왔다.
농민 부대는 이에 반발 해 무력으로 이민자의 집과 밭을 공격. 피해를 입은 독일 이주자는 거의 정착하지 못하고, 독일로 돌아가게 되었다고.
6. 룩셈부르크 붉은 사자당(룩셈부르크)
정치범, 탈옥들을 숨겨 준 조직.
소국 룩셈부르크 최대의 반 독일 조직으로, 1941년에 설립되었다. 반 나치의 언동을 하거나 저항하거나 나치에서 지명 수배를 받은 정치범과 감옥과 수용소에서 탈옥자 등을 조직적으로 은닉 활동을 실시했다. 2차 세계 대전 중 122명의 수배자를 무사히 숨겨주었다는.
7. 처칠 클럽(덴마크)
반 나치의 불량 소년 그룹.
보그 대성당 학교의 학생이었던 10대 소년 7명으로 구성된 불량 그룹.
덴마크는 1940년 나치에 점령되지만, 성인이 저항하지 않는 것을 못마땅하게 생각, 유리창을 부수거나 방화하거나 무기를 훔치거나 벽에 반 나치 낙서를 하거느 하는 등 성인에 대한 저항을 실천...
1942년 7명은 나치에 체포되어 버리지만, 탈옥하여 다시 행동을 했기 때문에 다시 체포되어 반년 간 감옥에 있게 된다.
그들의 저항은 1991년에 "The Boys from St.Petri"라는 제목으로 영화화 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