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장이 빨랐다면 역사가 바뀌었다는 일본 무기 Top 10

나치는 독창적 인 무기가 있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것이 전쟁 초기에, 혹은 대량으로 투입되었다면, 연합군은 더 고전을 면치 못했을 것이다.


그럼 일본은 어떤가?

일본군은 카미카제 특공대로 대표되는, 보다 원시적인 수단을 사용했을 것이라고 생각되기 쉽상이지만, 일본군이 개발 한 일부 무기는, 미군조차 능가하는 첨단 무기였다. 이것이 더 빨리 등장했더라면 세계의 역사가 비뀌었을 가능성도 있었다.


1. The I-201 Class 잠수함

제2차 세계 대전중, 바다를 고속으로 항해하는 잠수함은 나치의 독자적인 기술이 아니었다. 일본 해군의 伊201 잠수함의 수중 속력은 20노트 이상으로 나치의 U보트에 필적했다.


수중 속력이 10노트 정도가 당시 대부분의 잠수함이라 생각하면, 혁신적인 성능이었다. 수중 소음을 줄이기 위해 고무 코팅, 장거리 잠행을 가능하게 하는 거대한 배터리 등 등장이 빨랐다면, 연합군은 골치 꽤나 썩었을 것이다.


8척이 건조되어, 1945년에 3척이 취역했지만, 그해 일본군은 무조건 항복했다. 전후 미국에 의해 하와이로 옮겨져 조사 된 후 소련으로 넘어가는 것을 막기위해 폐기했다.


2. The I-401 Submarine

제2차 세계 대전 당시의 최대의 잠수함이다. 당시 미군이 보유하고 있던 최대의 잠수함보다 60% 크고, 항속 거리는 2배나 되었다.


그러나 정말 무서운 것은 그 크기가 아니다. 각 함은 3대의 항공기를 이착률 시킬 수 있었던 것이다. 또한 이중 껍질 구조(안경형, 복열형, 복안식으로 불리고 있다고 한다)로 되어있고, 이후 소련 잠수함의 설계에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이 있다.


현대 미사일 잠수함의 선구자이기도하다. 미국의 샌프란시스코와 파나마 운하에 몰래 접근 해 항공기를 발진시켜 폭격하기 위해 설계되었다.


3. The Kawanishi N1K1-J

일본 해군 최고의 전투기, 카와니시 N1K1은 조금 달라진 개발 경위가 있다. 원래 웨스트 항공기 수상 비행기로 고안되었었는데, 기체를 수상기의 수요 감소를 기대 육상 전투기 화 하는 제안을 한 것으로부터 개발이 시작되었다.


급거 개발되어 1944년에 배치 된 이 전투기는, 미군의 최신 무기에 적수가 되지 못했고, F4F 와일드 캣과 흡사했기 대문에 오인 사격의 위험이 있는 등 다양한 문제에 직면. 또한 브레이크의 효과가 좌우로 나뉘어져 착륙이 쉽지 않았다는 단점이.


그러나 착륙 장치를 단축하고, 엔진도 강화한 업그레이드 버전은 매우 뛰어난 기체로 거듭났다. 뛰어는 성능이 입증 되었지만, 전쟁의 승패에 영향을 줄 정도로 생산되지 못했다. 만약... 이 전투기가 대량 생산되었다면 상황은 많이 달라졌을 것이다.


4. The Type 5 15-Centimeter Antiaircraft Gun

1944년에는 미군의 B-29가 지속적으로 일본을 공습하기 시작했다. B-29는 일본의 대공포와 전투기가 닿지 않을 정도의 고공 비행했기 때문에 일본은 어쩔수가 없었다.


그 대책으로 1943년에 개발 된 것이 이 고사포이다. 이것은 당시의 일본 육군이 소유하고 있던 최대의 고사포 3식 12센티미터 고사포를 웃도는 크기였다. 포탄은 고도 20,000m에서 작렬하고, 200m의 적기를 격추 할 수 있었다. 


그러나 1945년에 이 고사포의 생산 준비가 되었을 때는 이미 너무 늦어버렸다. 일본의 도시와 산업 시설의 대부분이 잿더미가 되었고, 그 생산 능력이 빼앗긴 뒤였다. 신형의 표적 장치를 장착 한 2문의 고사포가 생산되어, 도쿄 인근에 배치, 2대의 B-29를 격추하는데 성공. 좀 더 빨리 배치되었다면....B-29는 좀 껄적지근 했었을 것.


5. The Ki-83

일본군 사상 최고 속도를 기록한 기체이다. 1944년에 첫 비행에 성공해, 조작성, 기동성 모두 뛰어난 성능이 입증되었다. 무장은 기수에 집중하고, 강력한 30mm 기관포 2문과 20mm 기관포 2문을 탑재했다. 그러나 일본 본토 공습으로, 비행 시험을 생각한데로 실시할 수 없었고, 3대의 시제기도 파괴되어 실용화 된 것은 아니었다.


일본이 항복 후 미군은 미확인 기체를 발견하고 놀랐다고 하는데. 미군의 조사에서는 최고 시속 760km를 기록, 상승 속도도 매우 뛰어나 같은 사이즈의 기체로 매우 이동성이 높은 것으로 밝혀졌다. 조사 후 바로 해체되었다.


6. The Kyushu J7W

일본군이 개발한 것중 가장 기발한 것. 제2차 세계 대전중에 대량 생산이 허용 된 유일한 기체.


제트기로 설계되었지만, 적절한 엔진이 없었기 때문에 프로펠러기로 전환되었다. 1943년에 소형 실험기의 비행에 성공하고, 반응을 얻었기 때문에 1944년에 본래 크기의 시제품 개발이 착수되었다.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던 해군은, 시제품의 시험이 완료되기 전에 생산을 결정했다. 이미 B-29에 의한 폭격이 예상되고 있었기 때문에, 이를 막을 기체가 필요했었다.


그러나 공습에 의해 생산은 크게 지연, 종전 전에 실시 된 시험 비행은 8월 3일, 6일, 8일 뿐이었다. 45분의 시험 비행에서는 파손의 우려가 있는 등 다양한 문제가 발생. 모두 대응 가능한 자잘한 문제였지만, 얼마 후 완전 항복으로 물건너 갔다.




7. The Nakajima Kikka

독일이 개발 한 세계 최초의 실용 제트 전투기 메서 슈미트 Me262의 성공에 힘입어 일본 해군도 제트 전투기의 개발에 나서기로 했다. 독일 주재 장교와 기술자가 메서 슈미트 Me262의 설계도를 입수, 그것을 바탕으로 나카지마 항공기 개발 지시가 내려졌다.


개발 팀은 Me262를 한층 작게하고, 뒷 날개가 아니라 테이퍼 날개를 채용했다. 또한 제어 플랩도 금속판이 아닌 천을 붙인것으로 원시적이었다. 엔진은 BMW 003A 제트 엔진이 채택 될 예정이었지만, 설계도가 손실 되었기 때문에, 그 단면도를 바탕으로 일본제 제트 엔진이 개발되었다고.


첫번째 프로토 타입이 완성 된 것은 1945년 8월....단 2회 시험 비행은 처음에는 성공했지만, 그 3일 후에 종전을 맞이했다.


8. The Type 5 Chi-Ri

미군의 M4 중형 전차에 대항을 염두에 두고 설계된 전차. 전차의 차체를 길게 한 것이 특징으로, 중량은 35t. 75mm 전차포를 탑재하고 전면 장갑은 75mm이다. 또한 부 무장으로 37mm 전차포와 7.7mm 기관총도 탑재되어 있었다. 엔진은 항공기 엔진이 기반, 최고 시속 45km였다.


1943~44년에 주포없이 그대로의 프로토 타입 1개만 제작되었다. 차고가 높고, 상대의 시인성을 높여 버렸는데, 전투 능력은 어디까지나 추측에 불과하지만, 자료에서만 보면 아주 우수한 것 같다.


9. The Nakajima G8N

제2차 세계 대전 개전 초기 일본군은 원거리 폭격기와 전투기에 수많은 전과를 올리기 위해, 태평양을 횡단 할 수 있을 정도의 원거리 폭격기가 요구되었다.


엔진을 4기 탑재 한 중폭격기, G8N은 일본제 전투기 수준의 최고 속도 3,700~7,470km의 항속거리, 최대 4000kg의 폭탄 탑재 능력을 자랑했다. 1944년 처녀 비행은 성공적이었다.


그러나 그 생산 준비 무렵에 필요로 한 무기는 원거리 폭격기가 아니라 전투기와 대공 무기 등의 방어용이었다. 실전에 투입 된 것은 아니라 경량 알루미늄 합금도 부족했기 때문에 생산이 중단됐다.


1. The Shimakaze-Class Destroyer

사상 최대의 전함을 개발 한 일본 해군이었지만, 더 작은 군함을 경시하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1941년에 기공 한 구축함 Destroyer는 구축함의 최고봉을 목표로 개발이 진행한 것이다.


12.7cm 연장포 및 15개의 어뢰 발사관 3기를 장착하고, 40노트를 달성, 제2차 세계 대전중에 가장 빠르고 가장 중무장 한 구축함이었다. 이 최고 속도를 실현하기 위해 탑재 된 실험적인 증기 터빈은 무려 8만 마력을 발생. 또한 레이더를 처음으로 탑재 한 일본 군함이기도 했다.


전쟁의 혼란속에서 건조하기 어려울 정도의 복잡성으로, 실제로 생산 된 것은 불과 1척뿐이다. 준공 한 ㄱ서은 1943년에 일본은 이미 열세에 처해져 있었기 때문에, 강력한 공격력이 있어도 그것이 발휘할 기회는 거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