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장의 여신, 소련의 여자 스나이퍼들

제정 러시아가 혁명에 의해 붕괴되고, 여성에게 선거권과 낙태, 다양한 문화 활동에 참여할 수 있는 자유를 얻게되었고, 1941년 독일이 소련을 침공.


총동원령이 내려진 소련은, 남성은 전선에서 여성은 공장이나 밭일에 종사하게 되지만, 그것만으로는 만족하지 않고, 간호사, 전차 승무원, 조종사로 활약하게 되었다.


서서히 전장에도 실제 참여하게되는데....격렬한 참호전이나 육탄전에 투입은 자제되었지만, 뒤에서 조용히 움직이는....스나이퍼로 등장하게 된다.


그 첫번째가 리자 미노로봐...

당당하고 남자 다운 분위기로 포스를 풍기는 그녀는, 1941년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바로 군에 지원. 흑해 함대 제255 해군 보병 여단에 배속되어, 오데사와 세바스토플 전투에 참가. 약 100여명의 적군 병사들과 장교를 사살했지만, 1943년 9월 적의 총에 맞아 사망.



309명을 저격했다는 류드밀라 빠부리첸코. 1937년 키예프 대학에서 면학에 열중하고 있었지만, 글라이더와 스포츠 사격에도 흥미를 가지고 있었다. 


민간인이 낙하산 등의 군사 훈련을 받을 수 있었던 "오소아뷔아히무"에서 정밀 사격을 습득한 후, 군에 지원....오데사의 전투에서 187명을 저격. 또한 세바스토플 전투에서 72명의 적병을 사살.




1942년 가을에는 "북미 청년 대표단"의 일원으로 선정되어 미국 대통령과 면담 한 최초의 소련 시민이 되기도 했었다. 



세번째 여성 저격수는 니나 빼토로봐.

만능 선수로 1932년 체육 교사의 면허를 취득. 그때 나이가 39세. 그 후, 레닌그라드의 저격수 학교에서 기술을 연마하였고, 그것을 계기로 저격수 교관이 되었다. 


1941년 독일군의 침공으로, 징병을 지원했지만 그 때 그녀의 나이가 48세로 부적격. 그래도 팔에 자신이 있다고 끝까지 우긴 이 아줌마는 의용군 제4사단에 배속. 곧 군대내 강사로 발탁되어 저격수로서 가장 높았던 상급 상사로 승진. 저격수 그룹의 리더가 된다.


512명의 저격수를 훈련 시켰고, 스스로 100여명이나 되는 적을 사살한 공포의 "맘마"는 명예훈장 3급, 2급을 받았고, 1945년 2월에는 1급도 추천되지만, 그녀가 탄 트럭이 복구중인 다리를 건너던 중 붕괴하여 사망했다고 한다.



4번째는 알리야 모루다구로봐.

1925년 카자흐스탄 태생으로 레닌 그라드에서 자란 그녀는, 1942년 당시에도 17세의 소녀. 전선에 나가기 위해 개교한지 얼마 안된 "중앙 여자 저격수 훈련 학교"에 입소. 1943년 7월 18세가 되던 해에 북서쪽 전선에 투입된다.


10월까지 32명을 사살하는 전과. 갸날픈 소녀였지만, 적에게는 두려운 존재. 그러나 이듬해 1월 노보소콜 니키의 접근전에서 독일군 장교와 총격전, 중상을 입고 사망했다. 공식적으로 78명을 사살했다는 알리야는 레닌 훈장과 소련 영웅으로 칭해졌다. 카자흐스탄 여성으로서는 2명 뿐인 동상도 세워졌고, 우표로도 나왔던 영웅이다.



<루닌 대위가 이끄는 저격수들....집단으로 적기를 격추시키기 위해>





다섯번째 저격수가 로쟈 샤니나.

1924년생으로, 동생 2명은 레닌 그라드와 크리미아 전투에서 잃었고, 1943년에 보육사였던 그녀는 "중앙 저격수 훈련 학교"에 입학. 야간에 움직이는 표적을 겨냥해 사격에 소질을 보였던 그녀는, 75명을 사살하는 전과를 올림. 


1945년 1월, 동 프로이센 근교에서 부상당한 포병 장교를 지키려다 가슴에 중상을 입고 병원으로 이송후, 그곳에서 숨을 거두었다.






이렇게 전쟁터로 향했던 여성 저격수는 대략 2000명 정도. 이중에서 살아돌아온 것은 약 500명. 마지막으로 현재 3만여명의 여성이 러시아 군에 몸담고 있으며, 아직도 스페츠나츠 등 특수 부대에서는 여성을 허용하지 않고 있다는..